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C 서울 (문단 편집) == 등번호별 주요 선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B_IMG_1560691444579.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A0007 15%, #000 15%, #000 29%, #AA0007 29%, #AA0007 43%, #000 43%, #000 57%, #AA0007 57%, #AA0007 71%, #000 71%, #000 85%, #AA0007 85%)" '''{{{#!html LEGENDS}}}'''}}} || * 이름이 '''굵게''' 처리된 선수는 현재 서울에 소속돼 있는 선수이며, 통산 기록은 리그, 리그컵, FA컵, ACL 합산 기록이다. '''1번''' * [[김현태(축구인)|김현태]] (1986~1991) - 럭키금성 황소 시절 부동의 넘버 원. LG 치타스 시절까지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 팀과 국대 GK 코치를 번갈아 가며 하는 등 국내 골키퍼 코치의 상징적인 인물. 117경기 154실점 30클린시트. * [[김용대]] (2010~2015) - '용대사르'. 귀네슈 이후의 서울의 황금기 골문을 책임진 선수. 비록 은퇴는 울산에서 했지만 서울에서 펼친 6시즌 동안의 활약으로 인해 서울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는 레전드. 222경기 240실점 70클린시트. * [[유상훈]] (2011~2021)[* 데뷔 때부터 2018시즌까지 줄곧 31번을 달았고 2019시즌부터 1번을 달고 뛰었다.] - 승부차기 선방의 달인. 2011년 입단하여 군문제를 위한 상주상무 기간을 제외하면 서울에서만 뛴 선수, 2016 시즌 우승 당시 크게 활약했으며 상무에서 돌아온 후인 2019시즌에도 주전 골키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양한빈과의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2021년을 끝으로 강원FC로 이적하였다. '''2번''' * [[정해성]] (1984~1989) - 럭키금성 황소의 2번을 상징하는 선수. 구단 최초 2년 연속 주장이자 프로 구단으로는 럭키금성에서만 뛰었던 원클럽맨. 1980년대 특유의 근성있는 미드필더. 은퇴 후 5년간 LG 치타스의 코칭 스태프로 몸 담기도 했다. 121경기 2득점 4도움. * [[다카하기]] (2015~2016) - 뛴 기간은 1년 6개월로 짧았지만 2015 시즌 FA컵 결승에서의 선제골, 2016 시즌 우승의 주역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일본인 선수. 62경기 5골 12도움. * '''[[황현수]]''' (2014~ ) - 서울의 첫 오산고등학교 유스 시대 출신 로컬 보이. 3년 간의 무명 생활을 청산하고 2017 시즌부터 주전으로 올라서기 시작했으며, 이후 4시즌 동안 꾸준히 주전급 수비수로 활약 중인 선수. 2021시즌 새롭게 부주장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2021시즌 최악의 폼을 보이며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렸고,설상가상 시즌 중 방역수칙을 위반하며 여러모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1시즌을 보냈다. 현재 팬들의 여론이 최악인 선수이자 이번 시즌 반등이 가장 필요한 선수 중 하나이다. '''3번''' * [[손현준]] (1995~1998, 2000~2003) - 안양 시절 스리백의 한 축을 담당했던 파이터형 수비수. 잠시 주장을 역임한 적도 있고 1999년 부산에 1년 외도한 것을 제외하면 안양에서만 경력을 쌓은 레전드. 은퇴 이후 2년 간 서울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164경기 1득점. * [[이웅희(축구선수)|이웅희]] (2014~2019)[* 2017시즌에 전역하고 나서는 43번을 달았다.] - ‘독사’. 2014 시즌 대전에서 이적해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5년 간 서울의 준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다. 117경기 2골 2도움. '''4번''' * [[이영익]] (1989~1997) - 프로 생활 9년 간 오직 치타스에서만 4번을 달고 뛴 레전드. 195경기 7득점 6도움. * [[김동진(1982)|김동진]] (2000~2006, 2011) - ‘황금 날개’. 8시즌의 구단 생활 내내 4번을 달고 뛰었다. 148경기 14득점 7도움. * [[김주영(1988)|김주영]] (2012~2014) - 경남에서 뛰면서 슈퍼매치 양 팀의 러브콜을 동시에 받았으나 서울에 대한 애정이 강해 서울행을 택했으며, 이후 3시즌 간 헌신적인 철벽 수비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 그러나 중국 이적 이후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인해 일찍 은퇴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한 불운의 아이콘. 125경기 5골 1도움. * [[김동우(축구선수)|김동우]] (2010~2018) - 우수한 외모로 다수의 여성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서울에서만 9시즌 소속돼 있었고 로테이션 멤버로서 2010년대 초중반 서울의 전성기에 일조한 조연 수비수이다. 106경기 2득점 2도움. * [[김남춘]] (2013~2020) - ‘춘디치’. 2013시즌 신인으로 입단해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서울에서만 7년을 뛰었던 원클럽맨. 그러나 2020 시즌 종료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에 구단은 2021시즌부터 김남춘의 계약기간 종료 시점인 2022시즌까지 4번의 임시결번을 지정했었다. 96경기 2득점 2도움. '''5번''' * [[조영증]] (1984~1987) - 럭키금성과 국가대표 레전드 수비수. 특히 피아퐁이 오기 전까지 럭키금성의 공격을 책임지기도 한 선수. 56경기 15득점 5도움. * [[차두리]] (2013~2015) - ‘차미네이터’. 국가대표 역대 최고의 오른쪽 풀백 중 하나. 독일, 스코틀랜드에서 해외 생활을 이어오다 2013 시즌 국내로 들어오면서 커리어의 첫 국내 팀으로 서울을 택했다. 2015 시즌 후반기에는 주장으로 FA컵 우승을 이끌고 커리어를 마감했다. 은퇴 후 오산고등학교 축구팀 감독을 역임했다. 114경기 2골 7도움. * '''[[오스마르]]''' (2014~2017, 2019~ ) - FC 서울의 리빙 레전드가 된 외국인 선수. 최용수 전술의 페르소나이자 K리그 현재 최고 기량의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불운했던 J리그 임대를 제외하고 무려 8시즌 째 서울과 동행을 이어오고 있으며, FC 서울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이기도 하다. '''6번''' * [[권오손]] (1984~1987) - 럭키금성 시절 1985시즌 팀의 첫 번째 우승에 견인한 수비수. 팀의 첫 6번 선수이다. 56경기 1도움. * [[무탐바 카봉고|무탐바]] (1997~2000) - 안양 LG 시절 팀의 용병 잔혹사 중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장수 용병. 팀의 3 번째 리그 우승와 1번째 FA컵 우승에 기여했다. 121경기 9골 3도움. * [[이민성]] (2005~2008) - [[이기형]]에 이어 6번을 넘겨 받았다. FC서울로 팀명이 바뀐 이후 첫 우승인 2006년 리그컵인 삼성 하우젠컵 우승에 주장으로 기여했다. 음주운전으로 말년이 좋지 못하게 끝났지만, 팀에 있는 동안 FC 서울이라는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한 주장. 92경기 2도움 * [[김진규(1985)|김진규]] (2007~2010, 2012~2015) - '철인 6호'. 6시즌 동안 6번을 달았다. 거친 플레이로 경기장 내에서 논란을 많이 일으켰으나, 팀에 보여주었던 헌신과 애정 때문에 서울 팬들이라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선수. 2023년 시즌 서울 1군 코치 역임 중. 270경기 16득점 8도움. * [[주세종]] (2016~2020) - 서울 팬 출신의 미드필더, N석에서 서울 응원가를 부르며 훗날 상암에서 뛰는 상상을 자주 하고는 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6시즌 드림 클럽이었던 서울로 이적해 의무 경찰 복무를 제외한 4시즌 동안 서울의 중심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대전 하나 시티즌]] 소속. 114경기 7골 9도움. '''7번''' * [[구상범]] (1986~1993) - 럭키금성 시절부터 LG 치타스 시절을 잇는 7번. 88 올림픽, 90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등 당대 최고의 풀백이었다. 166경기 15득점 13도움. * [[이을용]] (2003~2004, 2006~2008) - 2002 월드컵의 주역이자, 2008 시즌 주장으로서 팀의 준우승을 함께 한 멤버. 팀에서는 27번과 77번을 오가다 7번으로 정착했다. 2018 시즌 서울의 감독 대행을 역임했다. 그리고 대를 이어서 아들인 [[이태석(축구선수)|이태석]]이 서울 1군에 입성했다.[* FC 서울 역사상 처음으로 아버지와 아들에 걸쳐 2대가 서울 선수가 된 케이스.] 106경기 1골 6도움. * [[김치우]] (2008~2017) - 팀에 처음 합류한 2008 시즌과 군입대로 인해 2011,2012 시즌을 제외하고 7시즌 동안 7번을 달아 구단 7번의 상징이다. 2010년대 세 번의 리그 우승과 한 번의 FA컵에 큰 공헌을 한 구단 레전드. 231경기 14골 24도움. '''8번'''[* 윤상철과 아디라는 FC 서울 역대 최고의 레전드, 그리고 기성용이 공유하게 된 번호이다 보니, 서울 팬들 사이에서 레전드를 상징하는 번호로 자리잡게 되었다. 때문에 팬들은 서울에서 평범한 커리어를 이어가는 선수에게 등번호 8번이 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 [[윤상철]] (1988~1997) - '동대문의 사나이'. 1990년대를 풍미한 FC 서울 최고의 골잡이로 엄청난 기록에 비해 팬들에게 인지도가 매우 낮은 비운의 레전드이다. 팀 통산 출장 3위의 306경기, 팀 통산 최다 득점 2위의 102득점. * [[김성재(축구)|김성재]] (1999~2005) - 안양 시대의 마지막 주장이자 상암 시대의 첫 주장을 역임한 미드필더. 2020시즌 5월까지 최용수 사단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217경기 13골 11도움. * [[아디(축구인)|아디]] (2006~2013) - ‘이지스’. FC 서울과 K리그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수비수. 서울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5경기 20골 13도움. * [[신진호]] (2016~2018) - 짧고 굵게 간 8번. 2016년 단 3개월 만의 활약으로 팬들을 매료시켜 3년 뛴 선수보다 많은 환호를 받았다. 다만 2018년에는 상무에서 당한 탈장 부상과 팀 자체의 경기력 저하로 이전만한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46경기 3골 10도움. * '''[[기성용]]''' (2006~2010, 2020~ ) - K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기성용 영입 후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축구팬들 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관심도와 화제성까지 이끌어내고있어, 스타의 존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제대로 보여주고있는 사례이다.]이자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 그리고 2010년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심이었던 캡틴. 2007시즌부터 주전으로 뛰기 시작해 2008년 K리그 역대 최연소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고, 2009년에는 두 시즌 연속 K리그 베스트11에 선정됐으며, K리그 선수들이 뽑은 최고의 선수, 지도자들이 뽑은 가장 영입하고싶은 선수, 그리고 AFC 올해의 신인상까지 수상했다. 2010 시즌을 앞두고는 셀틱으로 이적한 뒤 11년 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2020시즌 여름에 다시 돌아오며 8번을 달게 되었다. 다만 2022시즌부터는 6번으로 번호를 옮겼다. '''9번''' * [[정조국]] (2003~2010, 2012~2015) - ‘분유캄프’. 안양 시절이었던 2003 시즌 신인왕 수상자이자, 오랜 기간 국대급 공격수로 자리한 선수. 266경기 84득점 22도움. * [[세르히오 에스쿠데로(일본)|세르히오 에스쿠데로]] (2012~2014) - 일본, 스페인, 아르헨티나 삼중국적을 가진 윙어. 2012 시즌에 임대로 합류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으며 전방 공격수가 힘을 못 썼던 2014 시즌에는 윤일록과 함께 팀 공격의 핵심을 맡았다. 118경기 20골 18도움. '''10번''' * [[강득수]] (1984~1989) - 구단 화려한 10번의 역사의 시작. 6시즌 동안 럭키금성에서 10번을 달며 피아퐁과 함께 최고의 호흡을 보인 '찬스메이커', 시대를 앞서간 '반대발 윙어'. 147경기 21득점 37도움. * [[최용수]] (1994~2000, 2006) - 10번을 단 시즌은 4시즌에 불과하지만, 21세기 K리그 첫 우승팀을 안양으로 만든 그. 구단 소속 유일 신인왕, MVP, 감독상 수상자. 148경기 54득점 26도움. 서울 감독으로서는 한 번의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 부진의 늪에 빠져있던 팀에 중도복귀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건져내고 그 다음 시즌에 바로 3위로 끌어올리는 등 구단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거론된다. 154경기 60골 26도움. * [[박주영]] (2005~2008, 2015~2021) - 서울의 영원한 10번. 신인 시절부터 '박주영 신드롬'으로 리그를 뒤집어 엎으며 K리그 역사에 기록될 데뷔 시즌을 보냈다. 현재의 서울 팬덤이 공고해진 계기를 만든 선수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로서도 역대 손가락 안에 드는 공격수였으며 돌아와서도 2015 FA컵 우승과 2016 시즌 리그 우승을 함께했고, 2019시즌에도 서울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크게 공헌했으며, 2021시즌을 끝으로 서울과 아름다운 동행을 마친 FC서울 팬들의 가슴 속의 영원한 레전드이자 승부사. * [[데얀 다먀노비치|데얀]] (2008~2013, 2016~2017)[* 박주영이 등번호 10번을 달았기 때문에 2008 시즌에는 11번을, 2016~2017 시즌에는 9번을 달았다.] - FC 서울 역대 최다 득점자이자 리그 득점왕을 3회 연속 수상한 K리그 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그가 라이벌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한 것 때문에 레전드 반열에서는 완전히 탈락했다. 다만 선수는 여전히 서울을 떠나서도 서울에 애정을 보이고 있고, 서울에서 쌓은 경이로운 커리어는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330경기 184골 48도움. '''11번''' * [[마우리시오 몰리나|몰리나]] (2011~2015) - 서울에서 5년간 활약한 K리그 역대 최고 클래스의 외국인 선수. 데얀과 함께 '데몰리션 콤비'로 2012시즌 서울의 압도적인 리그 우승의 주역이었다. 한 경기 3골 3도움을 기록하기도 했고, 스콜피온 킥으로 골도 만들었으며, 2015년 FA컵 결승전에서는 코너킥에서 직접 득점하여 우승을 확정 짓는 쐐기골을 넣기도 한 서울의 레전드. 205경기 54골 67도움. * '''[[조영욱]]''' (2018~ ) - '슈팅 몬스터'. 한국 축구 최고의 기대주 중 하나로,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거쳐 FC 서울에 입단했으며, 2018 시즌 승강 플레이오프에서의 골과 2020 시즌 잔류를 결정짓는 골로 두 번이나 서울을 수렁에서 건져내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선수이며, 2021시즌 마침내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후반기 서울의 상승행진에 크게 공헌한, 늘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에 진심인 선수이다. '''12번''' * [[박항서]] (1984~1988) - 럭키금성 황소의 창단 멤버. 1985 시즌 리그 우승을 이끌며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117경기 20골 8도움. * [[이영표]] (2000~2003) - '꾀돌이'. 서울의 마지막 12번.[* 이영표가 PSV로 떠난 이후, 서울의 서포터들을 위해 12번을 암묵적으로 결번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안양 시절 뛰었던 측면 수비수이다. 국가대표에서 127경기를 출장했을 만큼 국가대표로서의 활약도 대단했던 선수이다. 2002 월드컵 이후 안양 LG 치타스를 떠나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고 [[토트넘 홋스퍼 FC]],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선수이다. 81경기 3골 7도움. '''13번''' * [[조병영]] (1988~1997) - 럭키금성 황소 시절부터 안양 시절까지 10시즌을 서울에서만 뛴 원클럽맨. 1997시즌에는 주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윤상철]] 등과 함께 리빌딩의 명목 아래 비운하게 팀을 떠나야 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181경기 3골 1도움. * '''[[고요한]]''' (2004~ )[* 사실 등번호가 굉장히 자주 바뀌었던 선수다. 47(2004~2006), 32(2007~2008), 15(2009), 18(2010), 21(2011, 2013), 7(2012) 순으로 도합 10시즌 다른 등번호 달다가 2014시즌부터 13번으로 고정되었다. 지금은 불가능한 방식으로 일찌감치 데뷔해서 망정이지 여느 선수였으면 13번은 말년에 몇년 단 번호로 끝나 은퇴후 골머리 좀 썩혔을 것이다.] - FC 서울 역대 최다 경기 출장자이자 유일한 400경기 출전 선수. 2004년,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FC 서울에 입단한 후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에서만[* 중학교 중퇴로 인해 병역의무가 면제됐기 때문에 다른 원클럽맨들이 가지고 있는 [[상주 상무]] 경력조차 없이 말 그대로 서울에서만 뛰었다.] 헌신한 선수. 2016년 [[우라와 레즈]]와의 ACL 16강 연장 막판에 터뜨린 중거리 골과 몇 번의 슈퍼매치에서 팀을 구해낸 극장골, 2018년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의 생존을 가져온 역전골 등 굵직하고 중대한 순간마다 서울을 구해낸 선수다. 또한 암흑기인 2018년 중반부터 주장직을 맡아 승강전에서의 1부 생존과 다음 해 ACL 복귀로 구단 역사의 분기점이 될 순간을 완장을 찬 채 넘어왔다. 3년 연속 주장 연임도 구단 역사상 최초. 2020년 6월 6일 전북과의 홈 경기를 통해 구단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단일 클럽 4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본인이 마다하지 않는 이상 영구결번이 확실시 되는 선수다. '''14번''' * [[김한윤]] (2006~2010) - 이미 나이가 가득 찬 33살의 나이로 서울로 이적해 무려 37살의 나이에도 팀의 중심적인 축으로 활약했던 선수. 거친 플레이로 타 팀 팬들의 원성의 중심에 있던 선수였으나 서울팬들에게만큼은 크게 사랑받았던 언성 히어로. 은퇴 후에는 2년 간 서울의 코치로도 활약했다. 145경기 1골 3도움. '''15번''' * [[박용호(축구)|박용호]] (2000~2011) - 안양 시절을 포함해 11년 서울에서 뛰었던 수비수. 2010 시즌부터 2년 간 서울의 주장직을 역임하며 리그 우승에 기여한 레전드이다. 187경기 9골 1도움. '''16번''' * [[하대성]] (2010~2013, 2017~2019) - ‘상암의 왕’. 주장 콜이 가장 잘 어울렸던 사나이. 전북에서 서울로 이적한 후 좋은 활약을 한 선수이다. 2번의 리그 우승과 1번의 ACL 준우승, 3번의 베스트 미드필더 수상 등의 활약을 했다. 복귀 후엔 부상으로 인해 활약이 좋지 못했음에도 전성기 시절 임팩트만으로도 서울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 162경기 26골 19도움. '''17번''' * [[최진한]] (1985~1991) - 주장으로서 1990 시즌 동대문에서의 리그 우승에 혁혁한 공신을 세우며 리그 MVP까지 수상한 선수. 156경기 24골 15도움. '''18번''' * [[김은중]] (2004~2008) - 전체적으로 대전의 레전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서울에서도 5시즌 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이다. 139경기 41골 21도움. '''20번''' * [[이영진(1963)|이영진]] (1986~1995, 1997) - ‘악바리’. 1991 시즌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던, 활동량이 엄청났던 미드필더. 은퇴 이후에는 2006 시즌을 제외하고 2009 시즌까지 서울에서 코칭 스태프로 함께하며 수석코치까지 올라왔다. 231경기 16골 28도움. * [[한태유]] (2004~2006, 2008~2014) - 서울의 잠금장치, 원클럽맨. FC 서울의 황금기를 책임졌던 수비형 미드필더. 하대성, 고명진이 마음껏 공격에 가담하는 동안 뒤에서 묵묵히 서울의 중원을 쓸어담았다. 또한 상무 시절을 제외하면 오직 FC서울 유니폼만 입은 원클럽맨이기도 하다. 161경기 5골 5도움. '''21번''' * [[피야퐁 피우온|피아퐁]] (1984~1986) - 럭키금성 시절의 창단 멤버. 외국인 최초로 K리그 MVP에 선정된 태국 축구의 영웅이자 현재까지 K리그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동남아 선수. 1985시즌 K리그 최초로 득점왕-도움왕을 한 시즌에 동시 석권한 선수이다. 34경기 17골 6도움. * [[양한빈]] (2014~2023 ) - 2014년 서울에 합류해 2017년부터 주전 골키퍼로 올라와 2018 시즌에는 놀라운 활약으로 팀의 강등 위기를 막아내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골키퍼. 2021년 2년 재계약을 맺으며 서울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안익수 감독의 광신도로 거듭났고, 2022시즌 부주장을 맡게 되었다. '''22번''' * [[고명진(축구선수)|고명진]] (2003~2015) - '최후의 [[안양 LG 치타스]] 출신 선수.' 서울에서 데뷔해 10년 간을 서울에서만 뛴 [[고요한|투]][[고명진(축구선수)|고]](혹은 [[고광민|쓰리고]]) 조합의 주인공. 2015 시즌 전반기에 주장을 맡았으며, 2015년 알 라이얀으로 이적하면서 서울 생활을 끝마쳤지만 여전히 팬들이 제일 그리워하는 선수 중 하나. 283경기 18골 20도움. '''27번''' * [[조민국]] (1986–1992) - 럭키금성 시절 원클럽맨. 주 포지션은 수비수였으나 수비형 미드필더, 그리고 공격수까지도 소화했던 만능 멀티플레이어였다. 14, 13 등 여러 등번호를 받았지만 주전으로 올라서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끈 말년 시절의 27번이 더 기억되는 선수. 144경기 16골 12도움. * [[이청용]] (2004~2009) - [[기성용]]과 함께 서울, 그리고 국가대표에서 주축으로 성장하며 쌍용 콤비를 이룬 서울의 자부심. 2009년 [[볼튼 원더러스]]로 이적해 11년간 해외 생활을 이어가다가 2020년 [[울산 현대]]로 이적하며 아쉽게도 서울과의 인연은 마무리되었다. 78경기 12골 20도움. * [[고광민]] (2011~2023) - 쓰리고 조합의 일원. 공익 시절을 포함하여 햇수로 11년 째 서울과 인연을 이어오다 2023년 [[사바 FC]]로 이적하였다. 214경기 8골 18도움. '''33번''' * [[최태욱]] (2000~2003, 2010~2013) - 안양 시절 신인으로 데뷔했고, 2010 시즌 후반기에 다시 컴백해 1년간 지속되던 이청용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꾸면서 팀의 우승 주역이 되었고, 2012 시즌에도 주전으로 출장하면서 안양 시절까지 포함해 팀의 3번의 정규리그 우승을 지켜본 선수. 191경기 16골 25도움. '''50번''' * [[히칼도]] (2005~2007) - 비록 뛴 기간은 3시즌으로 짧았으나 2005시즌 박주영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으며 이 시즌에 도움왕을 기록하기도 했다. 쇼맨쉽이 뛰어났던 열정적인 모습과 팀에 대한 충성심, 한국을 떠나는 출국장에서 배웅을 하러 와준 팬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등 팬들에 대한 진심 덕분에 아직까지도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선수. 그리고 FC서울 역대 리그컵 도움 1위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76경기 8골 25도움. '''66번''' * [[한승규]] (2020, 2022~ ) - 임대전설, 이루어진 로맨스, 다사다난했던 2020 시즌 그 누구보다 팀에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활약도 엄청나 1년 만에 압도적인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2021 시즌 수원FC로 임대 후 전북에 복귀했으나 그 해 겨울 이적시장 막판 FC서울로 완전이적하며 화려한 복귀를 신고했다. 29경기 4골 4도움. '''88번''' * [[세르베르 제파로프]] (2010~2011) - 우즈벡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 2010 시즌 후반기에 합류해 압도적인 스탯을 쌓으며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40경기 2골 9도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